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문단 편집) == 개요 == ||<|2>[[파일:/image/280/2008/01/13/1200193349-47.jpg|width=100%]] || [[파일:/image/newsmaker/2008/01/24/1201167005.606046_760_18b.jpg|width=100%]] || ||[[파일:13937_25230_1425.jpg|width=100%]]||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 저 죽음을 응시해주길 바란다. 저 죽음을 끝내 지켜주길 바란다. 저 죽음을 다시 죽이지 말아주길 바란다.''' >---- > - 동아일보 1987년 1월 17일자 [[김중배]] 칼럼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 [[파일: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jpg]]] 중에서[* 이 칼럼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박종철 사건을 맡고 있었던 서울지검 형사부 안상수 검사는 "수사 도중 이 글을 읽고 감동을 받아 진실을 꼭 밝히리라는 결의를 다지게 되었다"고 했다.[[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0709|#]] ] >'''종철아! 잘 가그래이… 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 > - 박종철의 아버지 박정기[* 1997년에 (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을 지낸 바 있다. 2018년 7월 28일 새벽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89세.]가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011700209206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7-01-17&officeId=00020&pageNo=6&printNo=20090&publishType=00020|화장한 박종철의 유해를 임진강에 뿌리며 한 말]]. 이후 장례식장과 시민들이 박종철을 추모할 때 쓰는 구호가 되었다. [[1987년]] [[1월 14일]]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언어학과]] 3학년 학생 [[박종철]]이 경찰에게 연행되어 [[대공분실|남영동 대공분실]][* 이 건물은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곤 하는 [[김수근]]의 작품이다. 외관상으로도 보기 좋을 뿐만 아니라 [[고문]]당하는 사람에게 빛이 적게 가도록 5층 창문을 작게 설계한 것부터 시작해서 고문자/피고문자끼리 마주치지 않도록 방문을 교차 배치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가히 실용적으로 악랄하면서도 예술적으로 아름답도록 설계한 하나의 마스터피스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찰 인권센터로 사용했다가 지금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주도로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전환되었다. 잔혹한 고문이 일어났던 이곳에 인권센터, 그리고 민주인권기념관이 자리잡은 것은 민주화 이후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경찰의 모습과 당시의 교훈을 보존하고 후세에 전달하기 위한 운동가들의 의지가 배경이 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상세한 것은 대공분실 문서 참고. 갈월동에 소재하지만 [[남영역]]의 바로 옆에 가까이 붙어 있어서 남영동으로 더 많이 불린다. 이는 남영역도 마찬가지다.]에서 각종 고문을 받다가 사망한 사건.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다.[[https://newslibrary.chosun.com/highlight/highlight_art_detail.html?seq=26&pn=6|#]][[http://m.weekly.khan.co.kr/view.html?med_id=weekly&artid=14116&code=115|#]]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